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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5-06-30

​​지난해까지 ‘여성주간’이라는 이름으로 하던 정부 행사가 올해부터는 ‘양성평등주간’로 7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린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과 함께 이 나라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때를 맞아 합천지역에서 ‘여성’농민운동으로 지역사회 활동을 해온 이춘선 합천여성농민회 회장을 만났다. 아래는 6월 27일 오전, 신문사에서 이춘선 회장과 나눈 얘기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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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지역여성농민운동 경험,

 

전국 단위 정책에 녹아내겠다”

 

 

 

 

 

​​이춘선, “지역농산물 포기하는 농정, 제대로 된 농정 아니다” ©임임분

 

자기소개를 해달라.
옛 삼천포시인 사천시 바닷가 마을에서 1969년에 나서 자랐고, 경상대 다닐 때 합천 가회 출신인 남자(군의원 배몽희)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1994년 겨울, 합천으로 와서 쭉 살고 있다. 버섯농사부터 시작했고 지금은 쌀, 양파농사 짓고 소 키우고, 여성농민회에서 하는 토종종자보존을 위한 농사와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가회에서 시부모님, 남편과 살고 큰아들은 군복무, 작은아들은 삼가고 기숙사에서 지낸다.


합천여성농민회 대표다. 어쩌다 여성농민운동을 하게 되었나?
대학 전공이 원예과라 자연스럽게 농민운동을 접했다. 대학 다닐 때부터 농촌에 가서 농민운동을 할 생각과 여성운동에 대한 관심과 뜻이 있었고 내가 합천에 들어올 때 합천농민회도 조직을 꾸려 활동을 막 시작할 때였다. 가회지역 중심으로 지역농민운동이 시작되자 상대적으로 부인인 여성농민들이 일에 치이고 아이들에게 치이고 남편이 외부활동(농민운동)으로 빠진 자리에 여성이 떠안아야하는 일이 커지면서 쌓이는 고민과 어려움이 자연스럽게 여성농민이 여성농민운동에 합류하는 동기가 됐다. 20년 전이니 우리도 젊었고, 아이들은 어리고, 여성이 뭉쳐서 함께 하는 일이 개인에게도 필요하고 지역사회에도 절실한 욕구였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남성 중심 농민회가 활동을 시작할 때 아내가 여성농민회 활동을 한다고 하면 남성들(남편) 저항도 있었을까?
그 시기 남성들 중심 농민회 활동도 함께 하는 아내, 여성들의 지지가 상당히 필요했다. 여성이 여성농민운동을 함께 하면서 농민운동의 필요함을 함께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여성농민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계기, 농사 특성을 보면 여성이 맡는 역할이 꽤 크니까 그 자부심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인정받고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가 왜 농민운동을 해야 하는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 20년을 돌아보면?
농민운동 초기에는 특작이 많지 않은, 지금처럼 기업형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소득이 보장되었는데,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농민들에게 농한기와 농번기가 애매해졌다. 회원들이 젊으니 나락농사에서 특작으로 규모를 키워 지출규모를 맞추게 되고, 모임 할 시간은 자연히 줄게 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일은 많아졌는데 소득은 줄고 지출은 커지는, 게다가 농민운동 대오들의 연령대도 올라가면서 예전만큼의 결집력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 회원이 줄기도 하고 새 회원 확보는 안되고, 있는 회원이 꼭 해야 하는 활동에도 지치는 모습도 보이는 등, 현재 활동은 솔직히 주춤하다. 여성농민회와 농민회가 조직을 합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큰 틀에서 보면 그 과정이 맞지만, 현재 두 단위는 각자의 능력, 실력이 충분히 성숙한 상태가 아니다. 서로 더, 스스로 서는 과정이 있어야 합쳐도 모두에게 도움이 되니까.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쭉 하다가 개인의 욕구를 누르고 있었는데, 조직원끼리도 이런저런 부분에서 격차가 보이고, 그 격차를 좋은 방향으로 풀지 못하고 서로 꺼리거나 멀어지는 형태로 드러나는, 어느 조직에서나 겪는 과정도 있어서, 이 일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한 현상이기도 하고, 함께 잘 살자는 옛 구호가 시간이 흐르면서 빈부격차가 생기거나 각자의 삶의 가치가 다른 데서 오는 틈,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정이다. 게다가 남자가 나이 들면 더 밖으로 나가는데, 여자는 나이 들면 자기 영역에 파고 드는 습성도 보이는, 조직 입장에서는 좀 힘든 때다.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자리 잡는 합천이 되어야


합천에서 여성농민운동 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는 언제였을까?
아무래도 회원이 떨어져나갈 때 힘들다. 몇 안되는 회원이 해야 하는 역할이 무거워지니까. 예를 들어, 예전에 가회지역 영농발대식을 하면 7백여명이 모이는데, 그 행사를 우리가 맡아 했다. 보람이 있지만 아주 힘든 일이다. 관의 도움을 받는 조직은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 겉으로 드러나든 아니든, 어느 정도의 보상이 따르는데, 우리는 자발적인 조직이라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그럴 때, 우리도 사람이니 기운이 빠지고 조직력이 흔들린다.


지역아동센터, 지역농산물 생산과 유통, 지역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자평과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합천여성농업인센터를 시작하던 2004년, 그나마 지역에 자라는 아이들이 꽤 있을 때였다. 부모들이 농사, 외부활동으로 나다니니 우리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이나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교공부를 못하더라. 시작은, ‘우리 아이를 우리 힘으로 가르쳐보자’였다. 이를 계기로 2003년 가회면 오도리에 공부방을 열었고, 우리 회원 가운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회원 아이들부터 가르치기 시작하니 비회원 학부모들도, “우리 아이도 가르쳐달라”고 해서 규모가 커졌고, 공부방이 외진 곳에 있기도 하고 아이들도 다 외진 데 사니 아이들 귀가를 해줘야 하니까 운전면허 없던 여성회원들이 운전도 배우고. 당시 거창에서 여성농업인센터와 어린이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예를 따라 가회면에 있는 목욕탕 2층을 공부방으로 쓸까 하고 알아보니 물이 새는 공간, 어린이집을 하는데 맞는 규정 등 따져보니 새로 건물을 지어야한다는 경남도 실사결과가 나와, 땅은 우리가 마련하고 건설비를 당시 심의조 군수가 지원해주고 우리 회원 인력으로 지금 건물을 지었다. 아이들이 70명 가까이 늘어서 따로 공간이 필요해 다시 목욕탕 2층 건물을 재보수하기로 했는데, 이때는 당시 가회면사무소 면장이 지원해줘 재보수하기로 했는데, 실사 나온 교수가 이 공간을 단순 공부방이 아니라 지역아동센터로 확대해보라는 제안을 해서 회원들이 관련 조건을 갖춰서 현재 합천지역의 지역아동센터 거점이 되는, 합천꿈꾸는지역아동센터를 시작했다. 지역여성들이 도시가 아닌 곳에 살아도 자녀 교육에는 누구보다 관심과 열의가 높으니, 이 경험으로 지역에 학원이 없는 쌍책(쌍책지역아동센터), 가야(행복한아이터작은도서관)에도 공부방사업을 퍼뜨렸다. 그 외 지역에는 여성농업인센터사업으로 지역민들 대상으로 한글교실, 노래교실, 엿만들기 등을 했다. 지역을 바꾸려면 정치인 역할이 중요하니 지역정치도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지역정치인으로 세우는 일을 하게 됐다. 이제는 내가 주도해서 뭔가 일을 벌이기보다는 다른 지역여성이 스스로 찾아 할 수 있는 일을 돕는 일이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전여농 정책 책임자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전국단위 활동가를 키워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전국단위로 나가면 지역에 또 새로운, 좋은 활동가가 그 자리를 채워나가는 흐름이 조직에도 맞다고 본다. 전여농을 보면 경남과 전남북 활동가가 많은 일을 하고, 전남북 활동가 연령보다 경남 활동가 연령이 낮아 아무래도 많은 일을 맡게 된다. 우리 지역을 벗어나, 우리 지역을 아우르는, 전국단위 활동,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겠다.


합천군 여성농민정책에 대한 평을 한다면?
지자체 뿐 아니라 중앙에도 전담인력이 없으니 따로 ‘여성농민정책’이라고 얘기할 사안이 없는 셈이다. 학교급식 사안만 봐도, 여성농민이 이 나라에서 처음 학교급식을 요구했다. 농삿일 하면서 아이들 도시락 싸는 일이 힘들다, 학교에서 급식하라고 해서 유·무상을 논하는 여기까지 왔다. 일상에서 여성농민이 맡는 역할과 처한 어려움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거의 없으니, 지자체 담당부서에 ‘여성농민정책’에 대해 물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전국단위사업도 각 지자체에 맞는 특색을 따져 사업을 계획하고 운영해야 지역의 여성농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정책을 펼 수 있다고 본다. 지역의 여성농민단체와 여성농민정책 관련 함께 심도 있게 고민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없음이 아쉽다. 전담인력이 있어야 깊이 있는 고민, 일회성사업이 아닌, 꾸준한 사업을 하지 않겠는가? 또한 우리 지역에는 자발적인 시민사회단체가 많이 없다. 다양한 요구에 따라 스스로 결성되는 조직이 많이 생겨날 때 그 지역은 서로를 보듬어가면서 발전한다고 본다. 관에서 주도하는 단체로는 지역사회 발전은 어렵다. 거창만 해도 지역사회 고민을 함께 나누는 최소한의 사회단체가 있다. 이에 비해 합천은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없다. 지금 수준에서 그런 단체가 없다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자생적 감시·감독은 누가 하는가? 천편일률적 단체 난립, 그 단체들마저도 위축되는 상황, 지역의 퇴보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정부의 ‘여성주간’이 올해부터는 ‘양성평등주간’으로 바뀌어 7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린다.
남성과 여성으로만 판가름하는 양성보다는 그 중간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 더 제대로 된 용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행사도 합천에서 했다. 합천의 ‘여성주간’행사는 그동안 합천군여성단체협의회에서 해왔다고 안다. 제대로 된 행사라면, 여성단체 쪽에 초대장만 달랑 보내고 ‘오면 오고 안오면 그만’이라는 식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 함께 의논하는, 단체 대 단체로 협의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에서 주도해서 만들고 운영하는 단체와 우리처럼 자생적인 단체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분위기,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본다.
좀 더 바람직한 지역여성활동이라면, 합천군여성단체협의회를 비롯한 그 조직에 속하지 않은 자생적인 여성단체들과 여성규모가 많은 지역공무원노동조합 여성조합원, 농협의 여성조합원들에 우리까지 아우르는 단위가 함께 모여 고민하는 단위가 있었으면 한다. 행사 때마다 여성단체 대표 이름만 부르고 당사자는 자리에 없는 풍경에 대한 고민, ‘양성평등주간’만이라도 지역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고민과 활동 등 충분히 해야 하지 않을까?


8월 27일 전국여성농민결의대회,
11월 14일 농민·노동자·빈민 아우르는 민중총궐기대회 예정
 

현재 농촌은 밥쌀용 쌀 수입, 현재 국회비준을 남겨놓은 한국과 중국, 한국과 베트남, 한국과 뉴질랜드의 FTA(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의회) 등 정부 농업정책에 대한 농민단체의 고민은 깊다.
여성농민에게 올해는, 내년부터 5년 동안 적용되는 ‘4차 여성농어업인육성법’을 마련하는 중요한 때다. 전여농은 3차 평가와 4차 육성법에 대한 토론과 대안을 마련해 여성농민의 권익을 제대로 반영하는 법안을 위해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 한국 농업, 이미 풀릴 대로 풀렸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의회)는 정부의 개방농정의 결정판이다. TPP는 12개국과 하는 협상이라고 하지만 거의 모든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체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정부는 자동차, 반도체 등 공산품을 팔기 위해 쌀을 풀었고 이제는 앞서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밥쌀용쌀 수입 입찰), 미국 뜻에 따라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뜻대로 가는 TPP 사안은 중국과 미국·일본, 그 사이에 낀 한국의 정세와 밀접하게 물려 있고 이는 ‘한국 사드 (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배치’와도 뗄 수 없는 일이라 본다. 농사 지어 먹고 살기도 바쁜 농민이 강대국의 전쟁놀음에 대항하는 일도 고민해야 한다. 농업은 내가 먹고 사는 일이다. 이 일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발상, 아무리 잘 봐줘도 위험하다. 기후변화,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는 지구에서 지역농산물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투기성 농정을 줄여 무너진 농촌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최저생산비 보장하는 농정을 요구한다. 회원 뿐 아니라 농민들 농사 규모가 소득과 달리 커져서 예전처럼 결집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여농은 8월 27일 전국여성농민 결의대회, 11월 14일 농민·노동자·빈민 등 30만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민중대회로 정부의 반민중정책에 대항할 계획이다. 늘 그렇듯 힘든 싸움이지만, 우리는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지역언론에 대해 평소 하는 생각은?
지역사회를 건전하게 감시·감독하는 사회단체가 많이 없으니 우리 지역에서는 지역신문사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여성 실태와 대안’을 고민하는 단위가 따로 없으니 신문사들이 연합해서 지역토론회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역실태는 지역에서 고민해야 한다. 전국단위에서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읍 중심 여성들과 다른 면 단위 여성들의 격차도 우리는 세세하게 모른다. 읍에 사는 여성들은 대부분 상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 공무원이거나 공무원 가족이거나 농협 같은 공공기관 직원, 그 가족들일 것이다. 이들은 다른 면 단위 여성들에 비해 아이들 보육, 교육, 삶의 질 등 환경적으로나 생활적으로 면 단위에 비해 조금은 향상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가야권이 거창으로, 쌍책권이 고령으로, 삼가권이 진주로 빠진다고 그 지역민을 욕할 일이 아니다. 이들이 면 단위 여성들의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는가? 합천 5만여명이 모두 읍에 살지는 않는다. 더불어 단순 행사 중심 기사가 아니라 일반 지역민이 사는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내는 신문이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달라.
자기 살기 바쁘고, 생활도 어렵고, 인간의 본성이기도 한, 누구나 자기 자리 만들기에 골몰한데, 그 일도 중요하지만, 지역과 곁에 있는 사람들 둘러보며 살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내 욕심을 조금 줄이고 함께 잘 사는 일에도 좀 더 나서주면 좋겠고.


- 임임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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